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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연-'커츠'를 통해 도입한 식민지 문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은 '암흑의 핵심'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를 비판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제국주의라는 비윤리적 행위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악과 내면을 반영한 작품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중인물인 ‘커츠’에 주목하여 식민지 문제의 쟁점에 대해 고찰해보기로 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어두운 인물인 ‘커츠’는 ‘말로’에게 전설적인 상아 교역소장으로서 다른 직원들에 비해 몇 배나 더 많은 상아를 보내는 성과를 달성하는 책임감 강하고 열성적인 인물, 백인들의 우수한 과학과 문화를 전파하는 사절로 비춰진다. 심지어 ‘커츠’의 수하에 있는 흑인 노예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며, 그가 떠날 때 떠나지 못하도록 그의 배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로’가 끝내 발견한 ‘커츠’의 정체는 탐욕스럽고 잔인한 제국주의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상아 생산량이 많았던 것은 그가 흑인 노예들을 더 가혹하게 수탈한 결과였고, 그가 추앙받는 것은 총과 칼로 그들을 억압한 결과였다. 이처럼 ‘커츠’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표상한다.

근대의 역사학과 사회학은 민족주의와 진보라는 개념을 축으로 한다. 먼저 민족주의는 국민국가를 형성시키며 국민국가에 걸맞은 역사를 가지도록 역사 연구의 방향을 민족의 역사, 국가의 역사로 한정지었다. 그리고 진보라는 개념은 인류의 사회와 역사가 계속해서 진보할 것이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여 계급 간의 억압이나 민족 간의 억압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식민지 문제는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의 충돌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를 채택하는 경우에는 보통 억압이나 인권 침해, 민족의 자결권 침해를 근거로 식민주의를 비판한다. 후자를 채택하는 경우에는 식민지를 옹호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교육의 확대, 경제적 발전 등을 근거로 윤리적 문제를 제외하면, 식민 정책이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작가 조지프 콘래드가 식민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인 ‘커츠’를 내세웠다고 하더라도, 실제 벨기에령 콩고에서는 이와 비슷한, 어쩌면 더 심각한 수준의 착취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상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였던 콩고 자유국에서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흑인 노예의 팔을 절단하는 일이 흔했다.

먼저 유럽 열강이 자행한 지리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식민지배는 역사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로 지내온 일본의 식민지배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배는 약탈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고 식민 산업을 운영하기 위한 노동력과 재화 확보의 성격이 강하다. 피지배 민족에게 지배 민족과 동일한 권리나 혜택 등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서 일본의 식민 통치는 동아시아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세력권의 확대로 조선의 경제, 인구, 지정학적 중요성을 차지하여 어엿한 제국으로 나아가고,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에 목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차별이 있었고, 경제적 수탈이 자행되었지만 서양의 아프리카 수탈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1920~1930년대 일제가 조선을 자국의 식량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농민들이 항구에서 일본으로 옮겨질 쌀가마니를 쌓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우리나라 역사학의 가장 주된 대립은 이른바 수탈론과 근대화론이다. 수탈론은 일본의 식민지배 과정에서 이루어진 경제적 성장이나 발전이 오로지 수탈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집중한 나머지, 식민지배 과정에서 경제적 기초가 설립되고 기반 산업이 발달했다는 사실은 묵과한다. 반면 근대화론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선진적인 문화와 근대적인 산업구조,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를 옹호하기도 한다. 옹호하는 이들은 소수라고 하더라도, 근대화론은 근대적 사회의 기준은 경제나 산업과 같은 구조에만 집중한다. 민주주의와 자결권이 없는 사회가 근대적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지지부진한 논쟁을 넘어서고 역사학의 근대성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지기 위해 역사학에서는 새로운 풍조가 일기도 한다. 바로 민족주의를 벗어나자는 트랜스내셔널리즘이다. 근대는 에릭 홉스봄이 ‘제국의 시대’에서 꼬집었던 것처럼 근대가 진보, 발전, 전진 등의 희망찬 가치를 상실했고, 다양한 요소가 복합되어 나타난 넓은 지역사 또는 지구사를, 민족주의라는 허구적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국가를 위한 일국사로 축소시켰다는 것이 트랜스내셔널리즘의 주된 주장이다. 이를 따르는 학자들은 수탈론과 근대화론 모두 지극히 일국사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수탈론은 민족해방, 통일, 민주화운동을 정당화하고 근대화론은 건국, 남한의 경제발전을 일종의 ‘선’으로 보아 북한의 실패를 악 내지는 야만으로 치부하는 것을 정당화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묘하게 대한민국 정치에 있어 두 축의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했으며, ‘건국절 논란’등은 이 이데올로기 간의 적나라한 대립을 보여준다.

민족주의 그리고 식민지 문제에 관하여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사실’이다. ‘어둠의 심연’에서 비판하듯이 우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식민지인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인명손실, 인권 유린 등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들 가치는 경제적인 가치로 치환될 수 없는 것으로서 모든 식민 정책의 최대 오점이다. 또 일본의 식민 정책이 그 의도가 어떻든지 한국에 근대적 경제 체계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로 인해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국인들이 그 경제체제 하에서 일본인과 완전히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이 정립되고 나면 사실상 식민지 문제에 있어서는 가치판단의 단계가 남는다, 역사가들의 해석의 차이는 역사가가 중요시하고자 하는 가치 차이의 문제이며 타당한 논증을 거친 이론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는 흡사 대통령 ‘박정희’를 논할 때, 그의 친일 경력과 독재 정치에 집중하여 그를 비판하려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그가 이룩한 남한의 기적적인 경제발전에 집중하여 그를 치켜세우는 학계, 정치계 전반의 지지부진한 논쟁과도 같다. 전자의 경우 민족, 민주의 가치를 후자의 경우 경제적 발전, 현실적 삶의 질 등을 중요 가치로 삼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오늘날의 식민지 문제는 범세계적 문제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는 서구 열강의 무자비한 식민 정책 하에서 오랜 세월을 신음한 결과 현재까지도 내전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친일파 청산과 반일감정의 문제가 외교적 문제로 불거지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트랜스내셔널리즘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탈피함으로써 전지구적 또는 제국적 역사관을 통해 통합적 시각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조차 문화권과 지역에 따라 존재 여부가 상이한 점과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이 역사적 이론의 다양성의 관점에서 타당한지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동민  kdm41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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