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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역사 철학의 두 가지 주제에 대한 고찰

역사의 생성과 현실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역사의 성과와 발전을 어떻게 인식하고 서술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철학을 역사 철학이라고 한다. 이는 역사를 기술하기에 앞서 역사가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도구적 관념이며 역사라는 추상적 대상을 인식하기에 필요한 관념이기에 인식론이나 우주론 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컨대 헤겔의 관념론적 역사 철학과, 그에 대비되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각각 관념론과 유물론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 철학이다. 또한, 중세 서양의 아우구스티누스적 종교사관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역사를 바라보아 역사를 이원적 세력(선과 악)의 대립으로 설명했다. 역사 철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면은 단순히 역사 인식의 측면에서 끝나지 않고 역사서를 남기는 기술의 부분에도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역사서는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당대의 해석을 현대와 후대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무엇을’ 기술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기술할지도 역사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이번 기회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 철학의 두 가지 주제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사실 vs 해석

현대 역사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E. H. 카일 것이다. 그리고 항상 E. H. 카와 함께 거론되는 인물은 독일의 역사가 랑케이다. 이 두 인물이 함께 거론되는 것은 이들의 상반적인 역사관 때문이다. 랑케는 역사가가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wie es eigentlich gewesen)’만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역사가는 오직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며, 역사 서술에 있어서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주장하였으며, 역사 서술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개입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랑케와 같은 독일의 역사가들이 주장한 실증주의적 역사관의 진정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은 크로체와 콜링우드이다. 이들은 모든 역사가 현대사이며, 역사가가 완전한 사실을 서술할 수 없으므로 주관적 해석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는 양극의 입장을 절충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역사란 사실에 대한 노예도 아니고 억압적인 주인도 아니다"

카가 역사 서술에서 역사가의 해석을 강조한 것은 역사가가 필연적으로 주관적 관점에서 역사를 관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가가 사회적 행렬(sequence) 속에 있다고 비유하며, 역사가는 사회 외부의 절대적 관찰자가 아닌 사회 속의 영향을 받는 관찰자이고, 따라서 사회 안에서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회를 자신의 연구에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가 역사학자의 자질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랑케가 주장한 ‘사실로서의 역사’의 가치보다 각 사회에 의해 굴절되는 ‘기록으로서의 역사’의 가치를 부각한다. 카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과 그저 과거의 사실은 구별되는데 단순한 과거의 사실이 역사가의 선택을 받아 해석과 의의가 부여되고, 역사학자들의 동의를 거쳐야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확립된 역사적 사실은 역사를 구성하는 중추적 사실로서 이 사실에 대해 정확히 서술하는 것은 역사가의 의무이며 미덕은 아니다. 그리고 그 정확한 서술을 위해 다양한 보조학문(고고학, 연대측정학 등)이 사용된다.

역사학에서 역사가의 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가의 해석 자체가 당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며 과거에 대한 지속적인 현대적 해석이 이루어질 때, 과거의 사회로부터 현대 사회에 유효한 가치와 이해가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학인가?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제시한 ‘라플라스의 악마’는 뉴턴의 기계론적 결정론에 따라, 모든 물질의 물리량을 알고 미래까지 예측하는 가상의 존재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반박되었다. 만약 역사도 뉴턴의 여러 물리 법칙처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진행된다면 과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라플라스의 악마처럼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사는 일정한 법칙을 가지는가?

카는 역사는 과학이 아니며 예측할 수 없다는 반론에 대해, 역사가는 비록 특정한 예언은 아니더라도 미래의 행동에 대해 타당하고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역사가는 개별성보다 개별성 속의 일반성을 주의 깊게 보고 개별 사례에 대해 일반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진행에 각 사건이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일반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단 그 일반성은 역사의 발전을 특정하기에는 매우 어려울 정도의 일반성이다. 카는 역사가 인간 그 자체라는 마르크스의 견해를 적극 지지하는데, 이처럼 역사를 구성하는 데에는 수많은 인간이 요소로서 관여하며 이들은 사이의 다양한 상호작용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심리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점에서 불확실하며, 또한 역사에서 보편적 법칙을 얻어내기 위해 이루어지는 관찰의 과정에서 과거의 일을 다루기 때문에 비슷한 여러 상황의 독립 변인이 우연히 맞아 떨어더라도 통제 변인을 설정할 수 없다. 통제 변인이 제대로 설정되지 않으면 외부의 변수가 영향을 미치고 이 변수 또한 통제할 수 없기에 역사적 사건은 전부 개별적이지만 역사적 맥락에 의해 일련의 일반성을 가지게 된다. 즉 역사는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처럼 연구할 수는 없지만, 맥락을 살펴 맥락 속에서의 사건의 일반성과 개별성을 찾아낼 수 있다. 역사는 이러한 부분에서 사회와 조직, 인간이 특정한 상황에서 보이는 반응들과 그 결과를 귀납적으로 일반화하여 현대에 제시하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과 과거의 사회에 굴절된 역사 기술을 사료로 하여 주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현대의 사회와 미래에 대한 개연성을 얻어낼 수 있다.

우연의 개입 또한 역사가 과학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역사 속에서 사건의 주체이든 객체이든 행위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행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우연에 대한 개연성을 남기고, 우연의 발생은 역사를 바꾼다. 이는 어떠한 일반적 법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개별자로서의 특성이 역사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역사는 사실과 그에 근거한 역사가의 해석들이다. 역사 연구의 과정에서 사회와 개인은 사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일반적 반응 양상을 보인다. 이 양상은 완전히 과학적이지는 않다. 역사에서는 비슷한 상황임에도 되풀이되거나 되풀이되지 않은 수많은 사례가 있고 이들은 인과 관계를 완벽하게 정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인들은 카의 말처럼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과거의 사회를 이해하고, 현재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에드워드 헬릿 카(E. H. Carr, 1892~1982)

김동민  kdm41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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