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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민족사가 더 중요하다?

역사가는 역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관한 물음에 대한 가장 유명한 답은 아마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은 본래 어떠했는가를 단지 보여주는 것(bloss zeigen, 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는 랑케의 말일 것이다. 역사가는 "본래 그것이 어떻게 있었는가"를 알리는 것만을 의도해야 한다고 하여 객관주의를 지켰다. 그는 사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역사가의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사실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그가 믿는 역사 서술은 감정이나 가치 판단에 있어 주관성이 철저히 배제된 것이어야만 했으며 이것은 그의 신념인 동시에 확고한 실천 계율이었다. 그는 역사 사실은 사료 속에 원래 있었던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역사가의 임무는 비판적인 방법을 엄격히 적용하여 사료 속에 담겨진 순수한 사실을 발견해 내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는 "있었던 그대로 과거(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역사철학에서 왜 실증적 증거를 찾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1700년대 후반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가장 많은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역사는 사실만을 전달해야 한다는 관점이 많아졌으며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에 더불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했다. 찰스 다윈은 역사 철학의 관점을 가진 헤겔이 말한 역사의 절대정신은 하남님의 뜻이라는 것을 부정하며 진화의 증거를 찾겠다고 한다. 찰스 다윈은 실질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화석을 찾았으며, 이것이 바로 고고학이다.

랑케는 또한 개별과 특수성에 주목하라고 하였다. 사실 역사는 항상 발전해왔던 것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에 이를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에 이를 수는 없다고 하였다. 즉, 민족사에서 세계사로 갈 수는 있으나 세계사에서 민족사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사라는 보편성에 민족사가 속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만 보면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사만 보려고 하면 민족사는 알길이 없다고 민족과 국가 그리고 전통을 강조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사가 필수 과목인 것도 랑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랑케의 실증주의적 사관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하언  hawn1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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